CF 몬테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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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CF 몬테레이는 1945년 창단된 멕시코의 프로 축구 클럽으로, 멕시코 리그에서 5회 우승, 코파 MX에서 3회 우승을 차지했다. 2000년대 이후 구단은 황금기를 맞이하여 2010-11, 2011-12, 2012-13, 2019, 2021 시즌의 CONCACAF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포함, 국제 무대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몬테레이는 티그레스 UANL과의 라이벌 관계인 '클라시코 레히오몬타노' 경기로 유명하며, 에스타디오 BBVA를 홈 구장으로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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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F 몬테레이 - [스포츠팀]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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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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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 네임 | 클럽 데 푸트볼 몬테레이 |
약칭 | 몬테레이 |
별칭 | 라요ados (Rayados, 줄무늬) 라 판디야 (La Pandilla, 갱) 로스 알비아술레스 (Los Albiazules, 하양-파랑) |
창단일 | 1945년 6월 28일 |
홈 구장 | 에스타디오 BBVA |
수용 인원 | 53,500명 |
소유주 | FEMSA |
회장 | 호세 안토니오 노리에가 |
감독 | 마르틴 데미첼리스 |
리그 | 리가 MX |
시즌 | 아페르투라 2024 |
최종 순위 | 정규 시즌: 5위 결승 단계: 준우승 |
웹사이트 | rayados.com |
클럽 정보 (원어) | |
원어 명칭 | Club de Futbol Monterrey |
로마자 표기 | Keulleop De Putbol Montelei |
사용 언어 | 스페인어 |
경기장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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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누에보 레온 주, 몬테레이 |
유니폼 | |
홈 유니폼 | pattern_la1: _rayados2425h pattern_b1: _rayados2425h pattern_ra1: _rayados2425h pattern_sh1: _rayados2425h pattern_so1: leftarm1: 000040 body1: 000040 rightarm1: 000040 shorts1: 000040 socks1: 000040 |
원정 유니폼 | pattern_la2: _rayados2425a pattern_b2: _rayados2425a pattern_ra2: _rayados2425a pattern_sh2: _chivas2425a pattern_so2: _blanco leftarm2: body2: FFFFFF rightarm2: shorts2: 000040 socks2: FFFFFF |
세 번째 유니폼 | pattern_la3: _rayados2324t pattern_b3: _rayados2324t pattern_ra3: _rayados2324t pattern_sh3: _rayados2324t pattern_so3: leftarm3: body3: FFFFFF rightarm3: shorts3: 172A42 socks3: 172A42 |
2. 역사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직후인 1945년 6월 28일, 라몬 카르데나스 코로나도, 엔리케 아얄라 메디나, 폴 C. 프로버트, 로헬리오 칸투 고메스, 미겔 마르가인 소자야 등 산업 사업가 그룹이 CF 몬테레이를 창단했다.[64] 초기 유니폼은 흰색 바탕에 대각선으로 파란색 어깨 부분이 있는 디자인이었으나, 1965년부터 탐피코 마데로의 영향을 받아 현재와 같은 파란색과 흰색 세로 줄무늬 유니폼을 착용하기 시작했다.[64]
1945년 8월 19일, 산 세바스티안 데 레온과의 첫 프로 경기에서 호세 "체" 고메스의 결승골로 1-0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곧 몬테주마에게 0-6으로 대패했고, 선수단 버스가 산 후안 데 로스 라고스 도로에서 사고를 당해 많은 선수들이 사망하는 비극을 겪었다.[64] 다른 멕시코 클럽들이 선수들을 임대해 주어 리그를 계속 진행할 수 있었지만, 21경기 연속 패배와 121실점이라는 최악의 성적으로 리그 최하위를 기록, 1946년 리그 참가를 중단했다.[64]
1952년, 누에보 레온 주 축구 협회 회장 카를로스 칸세코 박사의 도움으로 2부 리그에서 활동을 재개하여 4년 만에 1부 리그로 승격했다.[64] 그러나 복귀 첫 해 최하위를 기록하며 다시 강등되었다. 1959-60 시즌에 다시 1부 리그로 승격한 후 현재까지 잔류하고 있다.
1960년대 초반, 몬테레이는 강등권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1959-60 시즌에는 강등된 클루브 세라야와 승점 3점 차로 간신히 강등을 면했다. 이후 몇 시즌 동안에도 비슷한 어려움을 겪었으나, 점차 경기력을 향상시켜 리그 상위권을 차지하기도 했다. 1963-64 시즌에는 3위, 1964-65 시즌에는 2위를 기록했다.
1970년대에는 1970년 FIFA 월드컵이 멕시코에서 개최되면서 리그가 두 개의 짧은 토너먼트로 나뉘어 진행되기도 했다. 1975년에는 포르투갈의 축구 영웅 에우제비우가 잠시 몬테레이에서 활약하며 10경기에 출전하여 1골을 기록했다.[64]
1980년대에는 몬테레이의 응원가가 만들어졌다. 1986년, 멕시코 1986 토너먼트에서 하이보스 탐피코 마데로를 상대로 2경기 합계 3-2로 승리하며 첫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이 경기에서 브라질 출신 레이날도 게르디니와 멕시코 출신 프란시스코 하비에르 크루스가 득점했고, 크루스는 득점왕을 차지했다.
1990년대에는 구단이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고 강등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2000년대 다니엘 파사레야 감독 부임 후인 2002년, 기예르모 프랑코 등 스타 선수들을 중심으로 팀을 재건하여 2003년 클라우수라에서 모나르카스 모렐리아를 2경기 합계 3-1로 꺾고 두 번째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64] 비토르 마누엘 부세티치 감독 부임 후인 2009년, 움베르토 수아소, 알도 데 니그리스 등 뛰어난 선수들을 바탕으로 2009 아페르투라, 2010 아페르투라에서 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황금기를 맞이했다. 아페르투라 2009 결승에서는 크루스 아술을 2경기 합계 6-4로, 아페르투라 2010에서는 산토스 라구나를 2경기 합계 5-3으로 꺾고 우승했다.[65]
2010-11 시즌부터 2012-13 시즌까지 CONCACAF 챔피언스리그 3연패를 달성하며 국제 무대에서도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다. 2010-11 시즌 결승에서는 레알 솔트레이크(미국)를 2경기 합계 3-2로 꺾고 첫 우승을 차지했다.[64] 2011-12 시즌과 2012-13 시즌 결승에서는 산토스 라구나를 각각 2경기 합계 3-2, 4-2로 꺾고 우승했다.[67]
2015년, 새로운 홈 구장인 에스타디오 BBVA 반코메르로 이전했다. 안토니오 모하메드 감독 체제에서 2019 아페르투라에서 5번째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2. 1. 창단 초기 (1940년대 ~ 1950년대)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직후인 1945년 6월 28일, 라몬 카르데나스 코로나도, 엔리케 아얄라 메디나, 폴 C. 프로버트, 로헬리오 칸투 고메스, 미겔 마르가인 소자야 등 산업 사업가 그룹이 CF 몬테레이를 창단했다.[64] 초기 유니폼은 흰색 바탕에 대각선으로 파란색 어깨 부분이 있는 디자인이었으나, 1965년부터 탐피코 마데로의 영향을 받아 현재와 같은 파란색과 흰색 세로 줄무늬 유니폼을 착용하기 시작했다.[64]
1945년 8월 19일, 산 세바스티안 데 레온과의 첫 프로 경기에서 호세 "체" 고메스의 결승골로 1-0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곧 몬테주마에게 0-6으로 대패했고, 선수단 버스가 산 후안 데 로스 라고스 도로에서 사고를 당해 많은 선수들이 사망하는 비극을 겪었다.[64] 다른 멕시코 클럽들이 선수들을 임대해 주어 리그를 계속 진행할 수 있었지만, 21경기 연속 패배와 121실점이라는 최악의 성적으로 리그 최하위를 기록했다. 결국 1946년 리그 참가를 중단했다.[64]
1952년, 누에보 레온 주 축구 협회 회장 카를로스 칸세코 박사의 도움으로 2부 리그에서 활동을 재개하여 4년 만에 1부 리그로 승격했다.[64] 그러나 복귀 첫 해 최하위를 기록하며 다시 2부 리그로 강등되었다. 1959-60 시즌에 다시 1부 리그로 승격한 후 현재까지 1부 리그에 잔류하고 있다.
2. 2. 1960년대 ~ 1980년대
1960년대 초반, 몬테레이는 강등권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1959-60 시즌에는 강등된 클루브 세라야와 승점 3점 차로 간신히 강등을 면했다. 이후 몇 시즌 동안에도 비슷한 어려움을 겪었으나, 점차 경기력을 향상시켜 리그 상위권을 차지하기도 했다. 1963-64 시즌에는 3위를 기록하며 우승팀 CD 과달라하라와의 승점 차를 5점으로 좁혔고, 1964-65 시즌에는 2위를 기록하며 승점 차를 3점으로 더욱 좁혔다.1970년대에는 1970년 FIFA 월드컵이 멕시코에서 개최되면서 리그가 두 개의 짧은 토너먼트로 나뉘어 진행되기도 했다. 1975년에는 포르투갈의 축구 영웅 에우제비우가 잠시 몬테레이에서 활약하며 10경기에 출전하여 1골을 기록했다.[64]
1980년대에는 몬테레이의 응원가가 만들어졌다. 1986년, 멕시코 1986 토너먼트에서 하이보스 탐피코 마데로를 상대로 2경기 합계 3-2로 승리하며 첫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이 경기에서 브라질 출신 레이날도 게르디니와 멕시코 출신 프란시스코 하비에르 크루스가 득점했고, 크루스는 득점왕을 차지했다.
2. 3. 1990년대: 재정 위기와 강등 위협
죄송합니다. 주어진 요약 및 원본 소스에는 1990년대 CF 몬테레이의 재정 위기나 강등 위협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없어 해당 섹션을 작성할 수 없습니다. 원본 소스에는 1989년 루이스 아길레가 작곡한 응원가에 대한 내용[9]만 언급되어 있을 뿐입니다.2. 4. 2000년대 ~ 현재: 황금기와 국제 무대 성공
다니엘 파사레야 감독 부임 후인 2002년, 기예르모 프랑코 등 스타 선수들을 중심으로 팀을 재건하여 2003년 클라우수라에서 모나르카스 모렐리아를 2경기 합계 3-1로 꺾고 두 번째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64] 비토르 마누엘 부세티치 감독 부임 후인 2009년, 움베르토 수아소, 알도 데 니그리스 등 뛰어난 선수들을 바탕으로 2009 아페르투라, 2010 아페르투라에서 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황금기를 맞이했다. 특히 아페르투라 2009 결승에서는 크루스 아술을 2경기 합계 6-4로 꺾고 세 번째 리그 우승을 달성했고,[65] 아페르투라 2010에서는 산토스 라구나를 2경기 합계 5-3으로 꺾고 네 번째 리그 우승을 거두었다.2010-11 시즌부터 2012-13 시즌까지 CONCACAF 챔피언스리그 3연패를 달성하며 국제 무대에서도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다. 2010-11 시즌 결승에서는 레알 솔트레이크(미국)를 2경기 합계 3-2로 꺾고 첫 우승을 차지했다.[64] 2011-12 시즌과 2012-13 시즌 결승에서는 산토스 라구나를 각각 2경기 합계 3-2, 4-2로 꺾고 2연패와 3연패를 달성했다.[67]
2015년, 새로운 홈 구장인 에스타디오 BBVA 반코메르로 이전했다. 안토니오 모하메드 감독 체제에서 2019 아페르투라에서 5번째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3. 클럽 문화
2002년, 몬테레이는 아르헨티나 출신 다니엘 파사레야를 감독으로 영입하고, 기예르모 프랑코, 발테르 에르비티, 헤수스 아레야노, 루이스 페레스와 같은 선수들을 중심으로 강력한 팀을 구성했다. 2003년 클라우수라 토너먼트에서 구단 역사상 첫 번째 공식 우승을 차지했다. 준결승에서 라이벌 티그레스를 사상 처음으로 리그에서 만나 1차전 원정 경기에서 4-1로 승리하고, 2차전 홈 경기에서 2-1로 패배했지만 합산 스코어 5-3으로 결승에 진출했다. 2003년 6월 14일, 모나르카스 모렐리아를 합산 3-1로 꺾고 17년 만에 두 번째 리그 우승을 달성했다.[46]
파사레야 감독이 2004년에 팀을 떠난 후, 몬테레이는 미겔 에레라를 감독으로 영입했다. 에레라 감독은 팀을 2004년 아페르투라 결승으로 이끌었지만, 푸마스에게 패했다. 2005년 아페르투라 토너먼트에서 다시 팀을 결승으로 이끌었지만, 이번에는 톨루카에게 합산 6-3으로 패했다. 이 패배 후, 기예르모 프랑코는 스페인 클럽 비야레알로 이적했다. 에레라 감독은 2007년 아페르투라에서 부진한 성적을 거둔 후 해임될 때까지 팀을 이끌었다. 2008년 클라우수라를 위해 몬테레이는 리카르도 라 볼페를 감독으로 영입했고, 팀은 준결승에 진출했다. 이 팀은 움베르토 수아소와 베테랑 공격수 하레드 보르헤티와 같은 새로운 선수들을 영입했다. 그러나 다음 토너먼트는 라야도스에게 좋지 않아 14위로 마감했다.
티그레스 UANL와의 클라시코 레히오몬타노는 몬테레이의 가장 중요한 라이벌 경기이다. 두 팀은 날씨나 팀 상황에 관계없이 모든 홈경기 티켓을 매진시키며, 클라시코 경기에서는 티켓 판매 시작과 동시에 매진되는 것으로 유명하다. 2022년 8월 기준으로 총 128번의 공식 클라시코 경기가 열렸으며, 티그레스가 47번, 몬테레이가 42번 승리했고, 39번은 무승부였다. 1974년 7월 13일 에스타디오 우니베르시타리오에서 열린 첫 번째 클라시코 경기는 1-1 무승부였으며, 두 번째 대결에서 몬테레이가 2-1로 승리하며 클라시코에서 첫 승을 거두었다.
최근에는 산토스 라구나와도 지역 라이벌 관계를 맺고 있으며, "라 노르테냐"라고 불린다. 두 팀은 총 4번의 결승전을 치렀고, 몬테레이가 3번, 산토스가 1번 승리했다.
레이라도스(Los Rayados)의 서포터들은 ''라 아딕시온''(La Adicción)으로 알려져 있으며, 에스타디오 BBVA 반코메르를 항상 가득 채우는 열정적인 팬들로 유명하다. 2016년에는 평균 관중 수가 경기당 5만 명으로 리가 MX에서 가장 높았다. 몬테레이 시는 프리메라 디비시온에서 정기적으로 매진되는 유일한 경기장을 보유하고 있어, 멕시코에서 가장 충성스러운 팬들을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C.F. 몬테레이의 서포터 ''라 아딕시온''은 티그레스 UANL의 서포터 ''리브레스 이 로코스(Libres y Lokos)''와 '클라시코' 경기 때마다 라이벌 의식을 보여준다.
몬테레이는 프란시스코 하비에르 크루스, 엑토르 베세라, 미사엘 에스피노사, 헤수스 아레야노, 안토니오 데 니그리스, 세베로 메사, 호나탄 오로스코, 헤수스 사발라, 히람 미에르, 헤수스 마누엘 코로나, 세사르 몬테스, 호나탄 곤잘레스, 카를로스 로드리게스 등과 같은 국가대표 선수들을 배출한 유소년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44]
3. 1. 유니폼
CF 몬테레이는 1945년 창단 이후 흰색과 파란색을 클럽 색상으로 사용해 왔으며, 세로 줄무늬를 기본으로 다양한 디자인을 선보였다. 파란색의 색조는 짙은 남색에서부터 밝은 파란색까지 변화를 거듭했으며, 세 번째 색상으로는 빨간색, 주황색, 청록색, 보라색, 자주색, 녹색 등이 사용되었다.초창기 유니폼은 파란색과 흰색이 사선으로 교차하는 셔츠에 흰색 반바지와 짙은 남색 양말이었다. 1955년 2부 리그 우승 이후에는 가슴에 두 개의 파란색 가로선이 있는 흰색 셔츠를 사용했다. 1960년대에는 자이보스 탐피코 마데로의 유니폼에서 영감을 받아 흰색 반바지와 양말에 하늘색 세로 줄무늬가 있는 유니폼을 착용했다. 1962년, D. 호세 라몬 바야나는 아스투리아스 FC에서 영감을 받아 현재까지 사용되는 유니폼 디자인을 도입했다.
1970년대에는 굵은 줄무늬, 파란색과 검은색 조합 등 다양한 디자인이 시도되었지만, 1980년대 중반 셔츠 색상이 로열 블루에서 현재의 짙은 남색으로 변경된 것이 가장 큰 변화였다.
1999년부터 2007년까지는 아틀레티카가 유니폼을 제작했고, 2007년부터 2014년까지는 나이키가 제작했다. 현재는 푸마가 CF 몬테레이의 유니폼을 제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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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2. 라이벌 관계
레예스(Rayados)의 최대 라이벌은 티그레스 UANL이며, 이들과의 경기는 클라시코 레히오몬타노라고 불린다.[46][47][48] 몬테레이와 티그레스는 날씨나 팀의 상황에 관계없이 모든 홈경기 티켓을 매진시키는 것으로 유명하며, 클라시코 경기에서는 티켓 판매가 시작되자마자 경기장이 매진된다.2022년 8월 기준으로 총 128번의 공식 클라시코 경기가 치러졌으며, 티그레스가 47번, 몬테레이가 42번 승리했고, 39번은 무승부로 끝났다. 1974년 7월 13일 에스타디오 우니베르시타리오에서 열린 첫 번째 클라시코 경기는 1-1 무승부였으며, 두 번째 대결에서 몬테레이가 2-1로 승리하며 클라시코에서 첫 승을 거두었다. 초기 경기의 대부분은 에스타디오 우니베르시타리오에서 열렸으며, 경기장 개조 전에는 평균 7만 명의 팬들이 이 경기에 참석했다. 첫 번째 공식 클라시코 이전에도 6번의 "비공식" 경기가 있었으며, 그중 5번은 레예스가 승리했다.
최근에는 산토스 라구나와도 지역 라이벌 관계를 맺고 있으며, 이 두 팀은 총 4번의 결승전을 치렀고, 몬테레이가 3번, 산토스가 1번 승리했다. 이 라이벌 관계는 "라 노르테냐"로 알려져 있다.
3. 3. 서포터
레이라도스(Los Rayados)의 서포터들은 ''라 아딕시온''(La Adicción)으로 알려져 있으며, 에스타디오 BBVA 반코메르를 항상 가득 채우는 열정적인 팬들로 유명하다. 2016년에는 평균 관중 수가 경기당 5만 명으로 리가 MX에서 가장 높았다. 몬테레이 시는 프리메라 디비시온에서 정기적으로 매진되는 유일한 경기장을 보유하고 있어, 멕시코에서 가장 충성스러운 팬들을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C.F. 몬테레이의 서포터 ''라 아딕시온''은 티그레스 UANL의 서포터 ''리브레스 이 로코스(Libres y Lokos)''와 '클라시코' 경기 때마다 라이벌 의식을 보여준다.
3. 4. 유소년 시스템
프란시스코 하비에르 크루스, 엑토르 베세라, 미사엘 에스피노사, 헤수스 아레야노, 안토니오 데 니그리스, 세베로 메사, 호나탄 오로스코, 헤수스 사발라, 히람 미에르, 헤수스 마누엘 코로나, 세사르 몬테스, 호나탄 곤잘레스, 카를로스 로드리게스 등과 같은 국가대표 선수들을 배출했다.[44]4. 경기장
몬테레이는 1950년부터 2015년까지 에스타디오 테크놀로히코를 홈 구장으로 사용했다.[53][54] 1973년부터 1980년까지는 잠시 에스타디오 우니베르시타리오를 사용하기도 했다. 에스타디오 테크놀로히코는 1950년 7월 17일 미겔 알레만 발데스 대통령에 의해 개장되었으며, 1986년 FIFA 월드컵 경기를 개최하기도 했다.
2015년부터 몬테레이는 몬테레이 광역권 과달루페에 위치한 에스타디오 BBVA를 홈 구장으로 사용하고 있다.[53][54] 이 경기장은 약 53,500명을 수용할 수 있으며, Populous의 크리스토퍼 리가 설계했다. FEMSA가 약 2억달러를 들여 건설했으며, 멕시코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기장 중 하나로 꼽힌다. 관람석 경사도는 34도로, FIFA 규정에 따라 선수들과의 거리를 최소화하여 മികച്ച 관람 환경을 제공한다.
5. 선수 명단
번호 | 포지션 | 이름 | 국적 |
---|---|---|---|
1 | GK | 에스테반 안드라다 | 아르헨티나|아르헨티나es |
7 | FW | 게르만 베르테라메 | 아르헨티나|아르헨티나es |
9 | FW | 브랜든 바즈퀘즈 | 미국|미국영어 |
10 | MF | 세르히오 카날레스 | 스페인|스페인es |
20 | DF | 세바스티안 베가스 | 칠레|칠레es |
30 | MF | 호르헤 로드리게스 | 아르헨티나|아르헨티나es |
33 | DF | 스테판 메디나 | 콜롬비아|콜롬비아es |
참고: FIFA 자격 규정에 따라 소속된 국가대표팀 국기를 표시합니다. 선수는 복수의 FIFA 비회원국 국적을 가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
5. 1. 1군 선수단
등번호 | 포지션 | 이름 |
---|---|---|
1 | GK | 에스테반 안드라다 |
3 | DF | 헤라르도 아르테아가 |
4 | DF | 빅토르 구스만 |
5 | MF | 피델 암브리즈 |
6 | DF | 에드손 구티에레스 |
7 | FW | 헤르만 베르테라메 |
8 | MF | 올리베르 토레스 |
9 | FW | 브랜든 바스케스 |
10 | MF | 세르히오 카날레스 |
14 | DF | 에릭 아기레 |
15 | DF | 엑토르 모레노 |
16 | MF | 요한 로하스 |
17 | MF | 헤수스 코로나 |
18 | DF | 악셀 그리할바 |
19 | MF | 호르디 코르티소 |
20 | DF | 세바스티안 베가스 |
22 | GK | 루이스 카르데나스 |
24 | GK | 세사르 라모스 |
29 | FW | 루카스 오캄포스 |
30 | MF | 호르헤 로드리게스 |
31 | FW | 로베르토 데 라 로사 |
32 | DF | 토니 레오네 |
33 | DF | 스테판 메디나 |
34 | DF | 세사르 부스토스 |
35 | MF | 페드로 라미레스 |
204 | MF | 이케르 핌브레스 |
5. 2. 임대 선수
포지션 | 이름 | 임대 구단 |
---|---|---|
DF | 올란도 보텔로 | 요크 유나이티드 |
DF | 하비에르 카시야스 | 베나도스 |
DF | 크리스티안 프랑코 | 후아레스 |
DF | 다니엘 파라 | 포지 |
DF | 구스타보 산체스 | 마사틀란 |
MF | 알폰소 곤잘레스 | 파추카 |
MF | 빅토르 로페스 | 케레타로 |
MF | 자지엘 마르티네스 | 아틀레티코 모렐리아 |
MF | 호수 마르티네스 | 요크 유나이티드 |
MF | 야코보 레예스 | 뉴멕시코 유나이티드 |
MF | 미첼 로드리게스 | UNAM |
MF | 안헬 사파타 | 시날로아 |
FW | 알리 아빌라 | UNAM |
5. 3. 역대 주요 선수
선수 | 국적 | 포지션 | CF 몬테레이에서의 활약 |
---|---|---|---|
에스테반 안드라다 | 아르헨티나|아르헨티나es | 골키퍼 | |
게르만 베르테라메 | 아르헨티나|아르헨티나es | 공격수 | |
브랜든 바즈퀘즈 | 미국|미국영어 | 공격수 | |
세르히오 카날레스 | 스페인|스페인es | 미드필더 | |
세바스티안 베가스 | 칠레|칠레es | 수비수 | |
호르헤 로드리게스 | 아르헨티나|아르헨티나es | 미드필더 | |
스테판 메디나 | 콜롬비아|콜롬비아es | 수비수 | |
에우제비우 | 포르투갈|포르투갈pt | 공격수 | 1975년 (10경기 출전 1득점)[64] |
프란시스코 하비에르 크루스 | 멕시코|멕시코es | 공격수 | 1986년 (메히코 86) 리그 득점왕 (14득점) |
기예르모 프랑코 | 멕시코|멕시코es | 공격수 | 아페르투라 2004 리그 득점왕 (15득점) |
움베르토 수아소 | 칠레|칠레es | 공격수 | 클라우수라 2008 리그 득점왕 (13득점) |
5. 4. 역대 최다 득점자
리그컵
CACAF
컵
리그